.
.
덜컹.
몸이 얕게 흔들리는 감각과 함께 불현듯 꺼져있던 정신이 맞붙습니다.
아무래도 버스 안에서 깜박 잠들어버렸던 모양이에요.

눈에 들어오는 풍경은 익숙하고도 평범한 버스의 내부.
흔들리는 손잡이, 끊임없이 스쳐 지나가는 차창너머의 풍경.
조금 낡은 감이 있는 앞좌석의 시트까지.
익숙한 것들 투성이인 차체의 내부에서 익숙하지 않은 점은 버스가 텅 비어있다는 점 뿐입니다.
그야말로 '나 자신'을 제외한 탑승객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두리번 거리던 중
문득 좌석의 맞은 편 정면에 붙어있는 버스 번호 라벨이 눈에 들어옵니다.
관찰 판정을 돌려주세요.

기준치: | 85/42/17 |
굴림: | 4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0704번.
이 버스는 아무래도 종점까지 우회해서 가는 버스의 번호인 것 같습니다.
그러니 탑승객이 별로 없을 법 하지요.

그래서, 어디쯤 왔지?
그 전에 목적지가 어디였더라
몽롱한 정신을 가다듬다보면 문득 기대고 있던 차창 너머로 시선이 돌아갑니다
흔들리는 창문 너머로
어느새 장대비가 쏟아져 내립니다.
꼭,
세상을 수몰시킬 것 처럼.

맞아요. 우산도 없는데. 이 비는 언제부터 내리기 시작한 걸까요?
잠들기 전까지만 해도 날씨가 제법 맑았던 것 같은데..
지능 판정이 있습니다.

기준치: | 65/32/13 |
굴림: | 40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
잠들기 전까지만 해도?
글쎄요,
정말 잠들기 전까지만해도 날씨가 맑았던가요?
세실은 문득 부자연스러운 위화감에 사로잡힙니다.
그야 잠들지 전의
기억이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언제 이 버스에 올라타 있었는지조차 떠오르지 않습니다.

(잠에서 깨고자 머리를 세차게 흔들어 본다.)
아무리 머리를 흔들어보아도. 마치 검은 도화지 위에 먹칠을 한 듯, 머릿속엔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뿌옇고 흐릿한 기억만이 잔존합니다.
세실, 산치 체크.
이성 롤을 굴려주세요.

기준치: | 75/37/15 |
굴림: | 72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덜컹.
어지러운 머리를 갈무리하기도 전에,
방지턱 탓인지 버스가 또 한번 크게 흔들립니다.
그 불친절한 진동과 함께 품에 안고 있던 무언가가 바닥으로 떨어집니다.

(떨어진 물건을 줍는다)
바닥에 나뒹굴던 물건은
국화꽃다발이네요.

바닥에 떨어져서일까요? 순백색의 꽃잎 몇송이가 바닥에 흐드러진 것 같습니다.
국화꽃을 들자
무언가 귓가에 울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듣기 판정.

기준치: | 60/30/12 |
굴림: | 1 |
판정결과: | 대성공 |
꽃다발을 주워들던 그 순간,
단말마와 같은 이명이 짤막하게 머리를 스치고 지나갑니다.
마치 틴벨과 같은 소리였습니다.

...
아,
그제야 흐릿한 의식 너머로 떠오르는 기억이 하나.
그렇지.
오늘은 소중한 사람의 첫번째 기일이었죠.
카네시로 고우시. 그의 기일입니다.

그러니 세실은 고우시가 잠들어 있는 납골당으로 향하는 길이었을 겁니다.
아무리 피곤해도 그렇지, 이런 중요한 사실을 잊고 있었다니.

거기까지 떠올리면 문득 버스는 인적이 드문 정류장에 정차합니다.
탑승구가 열리고,
올라타는 승객의 모습에
세실은 스스로의 눈을 의심하게 됩니다


고우시..?
그야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버스 위에 올라탄 사람은,
1년 전 죽었던 고우시 였으니까요.
고즈넉한 빗소리만이 울려퍼지며,
세실, 이성 체크.

기준치: | 75/37/15 |
굴림: | 47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
맞붙고,
멎습니다.
맞붙는 것은 허공 위로 겹쳐진 두 사람의 시선.
일순 멎는 세실의 호흡.
그 뿐입니다.
세실은 알고 있습니다.
내가 살고 있는 현실은 때로 꿈보다 비현실적이라는 사실을요.


그렇기에 지금껏 비현실적인 현실을 여러 차례 맞이해가며
이토록 불친절하고
잔인한 삶을 살아오지 않았던가요.
비현실적인 현실이요.
고우시는 분명
1년 전에 죽었습니다.
오늘처럼 비가 내리던 날
돌이킬 수 없는 사고에 휘말려서요.
..
그래요.
나는 그 소중한 사람이 죽음을 맞이하던 순간
곁에 있어주지 못했고.
그렇기에 그의 부재를 부정했던 기억을 떠올립니다.
그러니 내 앞에 서있는 저 사람은,
고우시가 아닌 그를 지나치게 닮은 사람일 겁니다.
꿈보다 비현실적인 현실의 나날 속에서도
실현될 수 없는 비현실이 있는 법입니다.
죽었던 사람이...

다시 살아돌아올 수는 없잖아요.

오랜만이네.

정말 고우시야?
저 무심한 얼굴. 그렇지만 나를 바라보는 조금은 다정한 눈.
아무리 부정하고 잊으려 애를 써도 잊히지 않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리웠고, 그리웠기에 나날이 새로운 처절함과 아픔을 느끼게 했었던
저 두 눈처럼요.
정차했던 버스는
오로지 두사람만을 태운 채, 다시금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당황했나요?
아니면 반가운가요?
혹은,
슬픈가요.


어딜 가는 중이었어?

....



덜컹.
다시 한번 방지턱을 밟고 지나간 버스가
얕게 흔들립니다.
관찰 판정을 돌려주세요.

기준치: | 85/42/17 |
굴림: | 59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얕은 진동 탓에 시야가 갈라짐과 동시에,
문득 운전석으로 시선이 꽂힙니다.
...이상합니다.
운전석에서 운전대를 잡고 있어야할 버스 기사가 보이지 않습니다.
이 버스는 그저 운전사도 없이 홀로 비가 내리는 도로를 내달리고 있습니다.
세실, 이성체크.

기준치: | 75/37/15 |
굴림: | 64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이상한 꿈? 일까요.

묻고 싶은게 많아보이네.
그는 일절 놀란 기색이 없습니다.

누가 장난치는 거 아니지?

앞에 있는 내가 다른 사람으로 보여?

여기는 어떻게 온 거야?

그냥 그래서 네 꿈으로 들어왔어.
네가 가기로 한 곳까지...
길을 잃지 않도록 내가 동행할게.



당연한 걸 왜 물어.


그날 옆에 못있어줘서..

궁금한게 많아 보이는 얼굴이더니,
이번에는 사과네.




그건 내 욕심이겠지.
이만 내리자.
그가 함께 가겠지요.
..
버스에서 내린 두 사람은 협소한 간이정류장 지붕 아래로 들어섭니다.
빗줄기는 여전히 이 세상을 침수시킬 것만 같이 맹렬합니다.
투명한 플라스틱으로 처리된 정류장 지붕 아래,
양 옆으로 담장 형식의 벽면이 기둥처럼 세워져있고
그 중앙에 원목으로 만들어진 나무 벤치가 하나 놓여있습니다.
버스 그림이 새겨진 표지판 또한 눈에 띕니다.




벽면을 바라보자
어디부터 살필까요?


응
벽면을 살펴보자
마치 담장을 연상시키는 정류장의 벽면에는
흰색 장미 무더기가 덩굴을 내리고 자리합니다.


더 살펴볼까요?
아니면 이동할까요.

기준치: | 85/42/17 |
굴림: | 78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장미를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그 아래에 피어난 꽃이 보입니다.
흰 색의...
국화네요
세실이 들고 있는 것과 같은 국화 꽃입니다.
흙속에 뿌리를 내린 채 한들한들 흔들리는 국화꽃은 물기를 머금은 탓에 아주 생생합니다.



국화꽃의 꽃말.
알아?
빗줄기에 파묻힌 탓일까요

너는 알아?
작게 속삭이는 고우시의 목소리가 어쩐지 막연하고 얕게 들려옵니다.
되묻는 세실의 질문에
고우시는 아무 반응이 없습니다.
적당한 롤을 굴려볼까요?
지능, 교육, 식물학으로 살필 수 있습니다.
잘 기억해보아요, 세실.

기준치: | 70/35/14 |
굴림: | 57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아!
어디선가 지나가면서 들은 국화꽃의 꽃말이 기억납니다.
분명..
'감사함과 진실함'
이었죠.

평소에 관심없어 보이긴 하던데.




국화꽃의 꽃말은
'감사함과 진실함' 이래.
그럼 색에 따라 꽃말도 다르다는 것도 모르겠네.
알아?


다음 버스가 올 때가지는 시간이 남은 거 같네.
이만 벤치에 앉자.

고우시가 무언가 생각에 잠긴 것 같습니다.
심리학 판정이 가능합니다.

기준치: | 10/5/2 |
굴림: | 96 |
판정결과: | 대실패 |
...
무슨 고민이라도 있어?

바로 벤치로 돌아갈까요?
아까 분명 무언가 하나가 더 있었는데.


표지판?



간략한 버스 그림이 새겨진 정류장 표지판 입니다.
표지판 아래 버스 노선도가 붙어있습니다.

...
평범한 노선도가 아니네요.
아니, 이를 노선도라고 칭해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버스 노선을 알리는 안내판에는
노선도 대신 '색상에 따른 국화꽃의 꽃말'에 대한 내용이 적혀있습니다.
.
흰색: 감사함, 진실함, 성실함
분홍색: 강조
노란색: 순정
보라색: 내 모든 것을 그대에게
.....색: 당신을....합니다.
.

맨 아래에 적혀있는 국화꽃의 색상과 색상별 의미는 칠이 벗겨져있어 읽을 수 없습니다.
무언가 볼 수 있을 방법이 없을까요?

(좀 더 자세히 관찰해보나...)
기준치: | 85/42/17 |
굴림: | 57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자세히 들여다보니 조금 보이는 것 같습니다.
붉은색. 이네요
꽃말은 여전히 보이지 않습니다.

고우시





..
관찰 롤을 굴려주세요.

기준치: | 85/42/17 |
굴림: | 91 |
판정결과: | 실패 |
한번 더?

기준치: | 85/42/17 |
굴림: | 34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표지판까지 모두 확인하고서 주위를 둘러보던 세실은.
버스 도착 안내 전광판을 발견합니다.



언제쯤 도착하는지 볼까?
전광판을 바라보자 글자가 보입니다.
다만 약한 노이즈가 끼어있는 탓에 무어라 적혀있는 지는 확인할 수가 없습니다.

기준치: | 85/42/17 |
굴림: | 51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조금 더 가까이서 확인하자 글자가 조금은 또렷하게 보입니다.
.
...의 이름을 호명할 때, 다음 버스가 도착합니다.
.
아이디어 롤을 굴려주세요.

기준치: | 65/32/13 |
굴림: | 47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가만히 글자를 바라보니 막연히 떠오르는 생각이 있습니다.
고우시의 이름을 불러야 다음 버스가 오나? 하는 실 없는 생각이요.


응,....세실.
왜, 였을까요.
나지막하게 당신을 부르는 고우시의 목소리는
어딘가 한구석, 차게 식은 빗물에 젖어 번지는 것만 같습니다.
당장이라도 물에 녹아 사라질 것만 같아요.

세실, 당신은
당신을 바라보는...
한없이 가라앉은 것만 같은 고우시의 두 눈동자에서
무엇을 읽어냈나요.
심라학 판정이 가능합니다.

기준치: | 10/5/2 |
굴림: | 81 |
판정결과: | 실패 |
그의 분위기만 얼핏 느껴질 뿐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었습니다.
지능 판정 역시 가능합니다.

기준치: | 65/32/13 |
굴림: | 51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그러고보니.
고우시의 입술 바깥으로 터져나온 '나'의 이름은 이번이 최초이지 않을까요.
고우시는 버스에서 조우한 이래로 단 한번도 내 이름을 불러주지 않았으니까요.

무어라 말을 건네기도 전에,
장대비의 포화를 가르고 라이트가 번쩍입니다.
곧 버스 한 대가 정류장 앞에 정차합니다.

버스의 전면 유리창에 붙어있는 라벨에는
1206번.
이라는 숫자가 적혀 있습니다.

먼저 타.

듣기 판정 있습니다.

기준치: | 60/30/12 |
굴림: | 17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삐--. 아까 전 들었던, 단말마와 같은 이명이 귓가를 울리고 사라집니다.
.
.

두 사람이 올라타는 것과 동시에 버스는 천천히 빗길 속을 뚫고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버스는 첫번째와 마찬가지로
텅 비어있습니다,.

이 안에 존재하는 탑승객은 오로지 세실과 고우시, 두사람 뿐입니다.

운전석을 살피면 이번에도
비어있네요.
버스는 운전기사 없이ㅣ 홀로 굴러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
이내 두사람은
의자 두개가 붙어있는 2인석에 앉습니다.
고우시는 세실의 질문에 끝내 답을 맺지 못합니다.
관찰 판정 가능합니다.

기준치: | 85/42/17 |
굴림: | 51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어라.
세실의 품에 있던 국화꽃이 일전보다 생기를 잃었습니다.
마냥 하얗던 꽃잎 끝이 짓밟힌듯 옅게 시들었습니다.








팬서비스의 연장선이니 같은 소리.

뭐 다른 거 더 아는 거 있어?

꽃말은 관심없는데.
필요해서 알아본 정도.


왜 거길 따지는 건데?


그러는 넌?


흔하게 널린 꽃이나 유명한 것 정도는 알 수 있잖아?
전혀 모르는 거냐?

당장 내가 좋아하는 꽃의 꽃말도 모르는 걸

뭔데?





작은 꽃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어서 귀엽잖아?





아니면...혹시 기준이 이상한가...?(작게 중얼거린다)
문득,
한 가지 기억이 떠오릅니다.
날짜를 특정할 수 없는 그 언젠가의 평범하고 행복했던 기억.
지금처럼 투닥이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그 때.
당신의 옆에는 사랑해 마지 않던 고우시가 자리하고,
우리는 조용하고도 한적한 버스에 앉아 함께 어디론가 향하고 있었습니다.
상기해낸 평화로움도 잠시.
세실은 갑작스러운 서늘함을 느끼게 됩니다.

글쎄, '서늘함'이라는 말로 형용할 수 있을까요?
두려움, 공포, 슬픔, 당황스러움.
모든 불안정한 감정이 한데 뭉쳐 숨통을 억세게 짓누르던 그 때.
빗길에 미끄러진 버스가 요동치듯 크게 흔들립니다.
무언가 머리를 강하게 맞는 충격과 함께 일순 힘이 빠져 나간 몸이 앞으로 쓰러집니다.
와락.
고꾸라지는 몸을 지탱하듯 누군가 나를 강한 힘으로 끌어안습니다.
아니, '누군가'라고 특정 지을 필요도 없잖아요.
그야 지금 당신의 곁에 존재하는 사람은
고우시 뿐인걸요.
그입니다.
어째서?
그런 의문을 던지기 전,
쾅--------!!!!!!!!!
반대편 차선을 지나치던 트럭과 버스가 갑작스레 충돌합니다.
직후 들려오는 것은 커다란 굉음.
쇠가 굽어들고 절단되는 듯한 소름끼치는 금속음.
무언가 터지는 소리.
날아가는 소리.
어딘가에 들이박는 듯한 충격.
온 몸의 뼈가 부리지고,
근육이 찢겨져 나가는 듯한 생생한 통증.
품에 안고 있던 국화꽃다발이 바닥을 나뒹굴고, 마치 눈송이같은 국화꽃잎은 시야를 긋고 흐드러집니다.
나를 꽉 끌어안은 고우시의 체온은 어쩐지 전혀,
따듯하지가 않아서.
그게 또 어쩐지 너무나도 슬퍼서...
괜찮느냐고 물어봐야하는데
이대로 정신을 잃으면 안 되는데.
고우시의 상태를 확인하기도 전에 시야가 수몰됩니다.
칠흑같은 어둠이 눈 앞에 쏟아집니다.
왜인지 생경하지 않은 순간입니다.
완전히 정신이 놓이기 직전,
듣기 롤을 굴려주세요.

기준치: | 60/30/12 |
굴림: | 67 |
판정결과: | 실패 |
...다시.

기준치: | 60/30/12 |
굴림: | 11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삐--.
의식과 함께 낙하하는 머릿속에는 이명이 들려옵니다.
그러나 이제와서 그런 이명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습니다.
어지러운 의식을 잠재우듯 귓가에
익숙하고도 조금은 서툰 다정함이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던 탓입니다.

하고요.
.
.
.
...깜박.

눈을 뜨자 제일 먼저 들려오는 것은
무겁게 낙수하는 물방울 소리.
그리고,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품에 안겨있는 백색의 국화꽃다발입니다.
꽃다발은 아까보다 조금 더 시들어있습니다.

이렇게 시들면 안 될텐데.
오늘을 위해 준비한 꽃인데, 막연한 슬픔이 느껴집니다.


어느 틈에 하차한 걸까요.
두 사람은 벤치에 앉아있습니다.

꼭 이 세상과 동떨어진 것만 같이, 끊임없이 펼쳐진 도로 한가운데 마련된 간이 정류장이요.

세실은 고우시에게 기대 잠들어있던 것 같습니다.

깨우지..



..


다시 잠들라던 고우시의 목소리가 어딘지 모르게 지쳐있는 것 같다는...
이유 모를 감상이 듭니다.



아님...
나랑 있는게.. 귀찮나?


주변을 살펴볼까요? 관찰 판정도 가능합니다.

기준치: | 85/42/17 |
굴림: | 58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기준치: | 85/42/17 |
굴림: | 26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주위를 둘러보자 버스 전광판이 보입니다.
어느 버스 정류장에서도 볼 수 있을 법한 평범한 전광판 입니다.
노이즈가 끼어있는 탓에 글자를 확인할 수 없습니다만,
첫번째 정류장에 비해 노이즈가 덜합니다.
살펴볼까요?

.
인도자.. ..의 이름을 호명할 때, 다음 버스가 도착합니다.
.

지능 롤을 굴려주세요.

기준치: | 65/32/13 |
굴림: | 19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버스 사고의 충격 탓일까요? 아무리 꿈이라고는 하지만 버스에 다시 올라타고 싶지 않다는 충동이 듭니다.

버스를 안 탈 수는 없나...

세실을 바라보는 고우시의 눈이,
너무도 슬퍼보입니다.

왜 그런 눈을 하는데..
뭘 말해줘야 나도 알 거 아니야.

...아니야.
세실.
..

무겁게 허공을 가르는 고우시의 목소리는,
어째서 이만큼이나 빗물에 수몰 될 듯 참담히 젖어있는지.
곧이어 세번째 버스가 다가옵니다.
버스는 지금까지 승차했던 버스와 달리 2층 버스입니다.
아, 두 사람 앞에 멈춰선 버스의 탑승구가 입을 벌립니다.
타고싶지 않아요.

안 탈래
타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무서울 거 없어.

차라리 다음 거 타면 안될까?






기준치: | 80/40/16 |
굴림: | 76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정말, 정말 타기 싫은가요?
달아나고 싶나요?


.....알았어

고우시가 손을 내밉니다.

버스 전면 유리창에 붙어있는 라벨에는
0925번.
이라고 적혀있습니다.



어서 올라오기나 해.

듣기 롤을 굴려주세요.

기준치: | 60/30/12 |
굴림: | 30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삐--. 아까 전 들었던, 이제는 익숙해진 단말마와 같은 이명이 귓가를 울리고 사라집니다.
아니,
이명이 아닙니다.
마치 기계음과 같은 소리였습니다.
.
.
두 사람이 올라탐과 동시에 버스가 움직입니다.
차창 바깥으로는 온통 습기뿐인 세계가 스쳐 지나갑니다.
버스는 지금까지의 버스와 마찬가지로 텅 비어있으며
기사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저 둘 뿐인 공간.
버스 내부에는 2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계단이 보이지만, 입구가 닫혀있습니다.
닫혀있는 문에는 커다란 자물쇠가 걸려있습니다.
관찰 판정이 가능합니다.

기준치: | 85/42/17 |
굴림: | 95 |
판정결과: | 실패 |

뭐 찾는 거 있어?

열쇠라도 있나 싶어서


기준치: | 85/42/17 |
굴림: | 49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세실의 품 안에 있던 국화꽃이 일전보다 훨씬 더 생기를 잃었습니다.

갓 생명을 피워낸 듯 하얗고 투명하던 꽃잎은, 이제는 그저 게절을 잃은 이름 모를 들꽃처럼 보여요.





어쩐지 고우시는, 조금 멍해보입니다. 아니 지쳐보이기도해요.



아, 뭐라 말했어?

한동안 내 이름 부르지 말라고..
듣기 싫으니까

이름을 안 부르면 뭐라고 불러.

아무튼 부르지마

....
두 사람만 태운 버스는 고요하기만 합니다.
주변을 살피거나, 롤을 굴릴 수 있습니다.

조금 둘러보자, 좌석 바닥에 책이 한권 보입니다.

(책을 확인합니다)
책이라기보다는 얇은 책자에 가까워보입니다.
푸른 색의 표지에는 아기자기한 회전목마 그림이 프린트 되어 있습니다.
놀이공원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화려하고도 쓸쓸한 푸른 대낮의 회전목마네요.
제목은 'marry go round'
.. 메리 고 라운드. 회전목마를 지칭하는 단어입니다.
.
한 사람이 생을 마감하며, 막 망자를 위한 길로 들어서기 직전 죽음과 삶의 경계에서 흔히 인생의 주마등과 마주하곤 한다.
지금껏 살아왔던 인생이 눈 앞에서 한 차례 영화처럼 펼쳐지는 현상을 주마등 현상이라고 일컫는다.
죽음의 끝에 당도한 산 자여, 그대의 삶이 적어내려간 필름의 길이를 돌아본 적이 있는가.
.
책자의 내용을 살피자 세실은 강한 현기증과 함께 정신을 잃습니다.
...
빛도 한줄기 들지 않는 맨 밑바닥의 어둠 속에서,
세실은 마치 환각과도 같은 장면과 마주합니다.
가장 기뻤던 순간, 가장 슬펐던 순간이, 죽어서도 잊지 못하리라 여겼던 반짝이던 삶의 조각과,
어느 순간 내 삶에 끼어들어 뿌리내려 침범한 너. 고우시와의 첫만남까지도요.
.
빼놓을 수 없는 여러 기억들이 스쳐 지나갑니다.
함께 맛있는 걸 먹었던 기억, 처음으로 그 앞에서 눈물을 터트렸던 기억, 대성공을 이룬 라이브와, 고조되는 행복감에 젖어 웃어보인 순간.
한동안 빠른 속도로 영상이 스쳐 지나가고 잠시간 필름이 뚝 끊기며 말간 어둠이 지속됩니다.
...주위를 둘러보아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문득, 다시금 터져나오는 영상이 하나.
두 사람의 모습이 보입니다.
.
고우시와 세실, 두 사람은 버스를 타고 어디론가 향하고 있습니다.
차창 바깥으로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행복해보입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서툴도록 다정하며, 애정이 넘치는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체온이 따스한 손으로 서로의 손을 맞잡고 있습니다.
고즈넉한 빗소리의 향연마저 서로간의 애정에 담뿍 물들어 있습니다.
하지만 그 행복도 잠시,
쾅--------!!!!!!!!!!!
반대편 차선을 지나치던 트럭과 버스가 갑작스레 충동합니다.
직후 들려요는 것은 커다란 굉음.
쇠가 굽어들고 절단되는 듯한 소름끼치는 금속음.
무언가 터지는 소리.
날아가는 소리.
어딘가에 들이박는듯한 충격.
온 몸의 뼈가 부러지고,
근육이 찢겨져 나가는 듯한 생생한 통증.
쉼없이 흔들리고 요동치는 어두운 화면 사이로, 그런 세실을 한 점 망설임 없이 끌어안는 누군가가 있었습니다.
당신은 강한 힘으로 끌어안깁니다.
아니, '누군가'라고 특정지을 필요도 없습니다.
당신 곁에서 사시사철 피어나는 국화처럼 존재하던 사람은 누구인가요.
늘 당신을 위해 스스로를 아끼지 않았으며,
온 생애를 다해 열렬히 사랑해주었던 사람은 누구인가요.
그야...고우시가 아닙니까.
카네시로 고우시입니다.
고우시가 억센 힘으로 세실, 당신을 끌어안았습니다.
.
암전하는 버스의 내부를 어둡게 띄우며 필름이 또 한 차례 뚝 끊겨나갑니다.
떠오르는 영상의 날짜는..
1년 전 오늘입니다.
아,
그제야 지금까지 서리가 내린 듯 희뿌옅기만 하던 기억 하나가 퍼즐조각처럼 맞달라 붙습니다.
1년 전의 사고가 떠오릅니다.
1년 전, 돌이킬 수 없는 사고의 현장에 존재하던 것은 고우시만이 아니었습니다.
고우시과 세실. 두 사람이 함께 있었습니다.

'나'를 제외한 탑승객 전원이 사망했던 그 참담한 사고의 현장에서,
고우시는 세실을 끌어안고 죽었습니다.
오로지 당신을 살리기 위해...
스스로를 희생 시켜서요.
..
이건...주마등인가요?
그래요. 이건 주마등입니다.
진실을 목격한 세실, 산치 체크.

기준치: | 75/37/15 |
굴림: | 75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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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이성 -1
일순 강한 충격과 함께 주마등이 돌아가던 공간이 산산이 부숴져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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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준치: | 60/30/12 |
굴림: | 65 |
판정결과: | 실패 |
..
꼭 말단부위부터 심장까지 강한 전기가 흘렀다 사라지는 것만 같은 감각.
이윽고,
수몰됩니다.
그 조각들과, 끊임없이 퍼붓는 빗소리에 한데 뒤엉켜있던 환각들이 수몰됩니다.
.
귀를 먹먹히 침수시키는 낙수음. 당신은 흔들리는 버스 좌석에 앉은 채 눈을 떠올립니다.

기억 났습니다.
떠올랐습니다.
1년 전의 그 날, 고우시는 나를 끌어안고 대신 죽었던 겁니다.
고개를 돌리면 그는 창가에 머리를 기댄채 곤히 잠들어있습니다.


깊게 잠든 탓일까요.
깨어나지 않습니다.
...덜컹.
버스가 방지턱을 밟고 흔들립니다.
머리가 어지럽습니다.
그에 맞춰,
짤그랑.
무언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미약한 금속음이 들려옵니다.

바닥을 살펴보니 회전목마 키링이 달린 작은 열쇠가 보입니다.

2층으로 가는 열쇠인가...
닫혀있는 입구의 문에는 커다란 자물쇠가 걸려있는 것이 보입니다.
열어볼까요?

버스의 2층으로 들어서자 이상하게도 단촐한 방과 같은 형식을 하고 있습니다.
곳곳에 자리하고 있는 차창에서 물기를 머금은 탁한 빛이 터져나와 내부를 은은히 비추고 있습니다.
내부에는 책상과 책장, 그리고 침대 하나가 놓여있네요.

각각 살펴볼 수 있습니다.

깔끔하게 정돈되어있는 책상 위에는 그 흔한 필기도구도, 책도, 사용감도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지 않네요.

먼지조차 없는 책상입니다.
책상 한가운데 반으로 접혀 있는 쪽지가 보입니다.

.
생과 사의 갈림길, 죽음이 머지 않은 영혼의 길을 인도하는 사자는 생전 그 사람이 가장 사랑했던 자의 얼굴로 나타나 여로를 안내한다.
.

쪽지 외에 다른 물건은 보이지 않습니다.

(책장을 살핀다.)
책장에는 책이 한가득 꽂혀있지만 당신이 읽을 수 없는 것들 뿐입니다.
검은 색의 책등만이 마치 밤하늘처럼 빼곡이 즐비합니다.
조금 더 살펴볼까요?

기준치: | 85/42/17 |
굴림: | 76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
죽음의 이름은 곧 다음 생으로 향하는 문이 열리기 전까지의 영원한 안식을 의미한다.
그 안식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사자는 산 자의 이름을 세 번 부른다.
세 번의 호명 끝에 산 자는 비로소 망자가 된다.
.
라는 쪽지가 떨어졌습니다.
무언가 곰곰히 생각해볼까요?

기준치: | 65/32/13 |
굴림: | 41, 78, 47 |
+2: | 보통 성공 |
+1: | 보통 성공 |
0: | 보통 성공 |
-1: | 실패 |
-2: | 실패 |
기준치: | 65/32/13 |
굴림: | 97 |
판정결과: | 실패 |
음...무언가 떠오를 듯 합니다.
다시 한번 잘 생각해볼까요?

기준치: | 65/32/13 |
굴림: | 11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아! 생각해보니,
늘 정류장에서 고우시는 당신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어째선지 당신의 이름을 부른 후에는...
버스가 도착했죠.

더 이상 책장에서 찾을 수 있는 건 없어보입니다.

꼭 병원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병실용 침대입니다.
다가서면 커튼이 반쯤 쳐져있습니다.
커튼 위로 핀이 꽂힌 명찰 하나가 매달려 있는 것을 확인 할 수 있습니다.

명찰에는
'키시모토 미나미 님'
이라고 적혀있습니다.

문득,
당신은 뼈를 치고 사라지는 기시감에 휩싸입니다.
조금 급한 손길로 커튼을 걷어내면 드러나는 것은
쓸쓸하기 짝이 없는 병실의 매트리스 침대.
침대 주변으로 즐비한 온갖 의료 장치들.
그 사이에 푸른색 담요를 덮고 누워있는 사람은 입가에 산소마스크를 뒤집어 쓴 채 눈을 감고 있습니다.
그제야 당신은 형용할 수 없었던 기시감의 정체와 마주합니다.
세실, 당신이잖아요.

병상에 누워 끊임없이 즐비한 갖가지 의료 기계들 틈 사이에서, 산소 호흡기를 뒤집어 쓴 채 실낱같은 생명을 부지하고 있는 사람은...
듣기 판정.

기준치: | 60/30/12 |
굴림: | 68 |
판정결과: | 실패 |
...
삐---. 이건, 이명인가요? 방금 무슨 소리가 들려오지 않았습니까?
관찰 판정.

기준치: | 85/42/17 |
굴림: | 65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병상 옆에 자리하고 있는 심전도기록장치가 보입니다.
기록장치의 모니터 위로 마치 미약한 파도같은 당신의 심전도 곡선이 출력되어 흐르고 있습니다.
마치 당장이라도 숨이 멎을 것만 같은,
연약하고도 미약한 곡선이요.
아이디어 판정.

기준치: | 65/32/13 |
굴림: | 48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그러고보면 방금 전의 이명도, 그 전의 수많은 이명도 이 심전도기록장치의 소리인 거 같습니다.
당신을 안고 죽은 고우시의 희생이 무색하게, 당신은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버스는 무엇인가요.

정말 내가 알고 있는 목적지로 향하고 있는 것이 맞습니까.
세실, 이성 체크.

기준치: | 74/37/14 |
굴림: | 64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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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이성 -1
...
.
믿을 수 없는 현실의 연속입니다.
아니, 이제 이건 현실이 아니겠지요.
이 버스는, 스스로가 수몰되어가는 버스.
.
'영원한 안식'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라타 있는 것은 바로 세실, 당신입니다.
...
...
어쩐지 몸이 강하게 흔들리는 것만 같은 느낌에 눈을 감았다 떠올리면, 흐릿하고 침침한 시야 너머로 희기만 한 천장이 들어옵니다.
삐.
삐.
삐.
벨이 터지는 소리, 장치에서 터져나오는 다급한 기계음 소리, 위급한 환자의 위치를 알리는 병원의 방송 소리, 급박한 발걸음 소리가 뭉개지고.
흰 가운을 입은 의사가 당신의 이름을 부르고....
그리고 세실은, 다시 눈을 감습니다...
.
.
.
쏴아아.
고요하고 적막하게 수몰하는 세상을 울리는 빗소리.
낙수하는 빗물은 봄의 끝물에 삶을 모두 피워내고 낙화하는 벚꽃을 닮았습니다.
부드럽게 머리칼을 쓸어주는 손길에 정신을 차리면, 어느새 정류장입니다.
품에 안겨있는 국화꽃은 이제 생기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처참히 시들어 있습니다.




진짜 고우시가 맞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얼굴 뒤로.
정류장의 전광판이 눈에 들어옵니다.
지금까지의 전광판과 다른 점이 있다면
조금의 노이즈도 끼어 있지 않다는 것.
이제는 온전히 읽을 수 있습니다.
눈으로 한번 훑어볼까요?

.
인도자가 인도를 받을 자의 이름을 호명할 때, 마지막 버스가 도착합니다.
.
아 그래요.
그래서였군요.
세실은 지금까지 고우시가 각 정류장에서 자신의 이름을 호명했던 일을 떠올립니다.
그러고보면 꼭...
고우시가 자신의 이름을 부른 뒤에 버스가 도착하지 않았나요.
그야 당연하잖아요.
전광판에 메세지에 따르면,
인도자는 고우시. 인도를 받을 자는, 망자의 길에 들어선 자.
죽음의 여로에서 가장 먼저 버스에 타 있던 사람.
자신이니까요.



그런데 어째서일까요.
그는 당신의 이름을 부르지 않습니다.
이제, 마지막일텐데.
어째서.
그를 자세히 살펴볼까요?

기준치: | 85/42/17 |
굴림: | 37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세실은 첫 번째 버스에서 조우한 직후 지금껏 단 한번도 보지 못한 고우시의 표정을 마주합니다.
그는...
기뻐보입니다. 동시에 슬퍼보입니다.
한편으로는 어딘지 홀가분해보이는 눈으로 당신을 봅니다.


우산을 씌어주는 그의 어깨가 젖어갑니다.
그러고보니 우산을 씌어주기 위해 일어선 덕인지 그가 입고 있는 옷이 보입니다.
이제서야 옷차림이 눈에 들어오다니.
그는....
그는 검은 정장을 입고 있습니다.
꼭, 세상이 말하는 인도자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그보다...
좋은 밤이네, 내...사랑. (멋쩍다는 듯이 눈을 흘긴다)
자. (손을 내민다)




도중에 길을 잃지 않도록, 바래다 주겠다고 했잖아. 벌써 잊었냐?

그래서 내가 같이 쭉 있어달라고 했잖아

일단 반대편 정류장으로 넘어가자.
꼭 해야하는 말이 있어 (손을 잡아 이끈다)

두 사람은 손을 맞잡고 천천히 반대편 정류장으로 향합니다.
발끝을 적시는 빗물은 기실 뜨거운지도, 차가운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아요.
그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야 당연하잖아요.
내가 지금 온 힘들 다해 집중해야할 존재는 눈 앞의 한 사람 뿐인걸요.



우리가 함께 타고 있던 버스가 사고를 당했지.
나는 죽었지만...너는 가까스로 살아남았어.
그러나 1년 동안 혼수상태에 빠져있었지.
조목조목하게 설명하는 목소리가 점점 무거워집니다.

네 영혼은 얼마 전 삶의 경계를 벗어났어.
그런 너를 노리는 놈들이 있었고.


그래서 너를 안전한 안식으로 이끌기 위해.....누군가와 계약을 했어.
그래서 우리는 만날 수 있던 거야.


그런 놈들 생각까지 알까보냐.
내렸던 정류장에서 네 이름을 부른 것도
그 버스 자체가 공간으로 이동하는 힘이라서야.
눈치도 빨라선 이름을 부르지 말라고 하질 않나.

(쓱,,)

아무튼.
이제 더 이상 네 이름을 부를 필요가 없어졌다.
중간에 어느 이상한? 무언가가 도와준다니까.
다시 삶으로 돌아가자.

너는?

돌아갈 몸조차 없다는 거, 알잖아?




아 그리고 그 국화.
잘 들고 있어. 네 생명줄이니까.


그의 말을 끝으로
건너편 정류장에 도착했습니다.
조금...숨이 막힙니다.
억만겹의 슬픔 탓일까요.
아니면..
그렇게 말하는 너의 표정이 그 어느 때보다도 기뻐 보여서 였을까요.
세실, 산치 체크.

기준치: | 73/36/14 |
굴림: | 13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세실, 이성 -1
..
문득 고우시의 어깨 너머로 희미한 불빛이 들어오는 전광판이 보입니다.
전광판의 메세지는 우리가 원래 앉아있던 반대편 정류장의 메세지와 내용이 상이합니다.
읽어볼까요?

.
삶으로의 귀환.
삶으로 인도받을 자가 인도자의 이름을 부르면, 삶으로 향하는 생환 버스가 도착합니다.
.

이제.
네가 내 이름을 불러야 할 차례네.
마지막이니까 한번만 더 말해볼까.
하는 그의 목소리가 희미합니다.

이제는 반대입니다.
이제는
당신이 그의 이름을 불러야 합니다. 세실.

....사랑해, 고우시.
떨리는 목소리로 고우시의 이름을 부르자...
바람이 붑니다.
온전히 침체된 죽음의 여로 반대편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어깨가 젖어듭니다.
바람이 이렇게 세차게 불면, 우산도 소용 없는 법입니다.
그러니 지금 내 뺨을 타고 흐르는 것은 눈물이 아닌 빗물인 겁니다.
.
얼마 있지 않아 정류장 앞에 라이트를 켠 버스 한대가 정차합니다.
버스의 번호는,
0623번.
버스의 출입구가 열립니다.


어서 타.








....타면, 들려줄게.

...갈게.....지금이 아니더라도 또 볼 수 있음 좋겠네...잘있어 고우시\
당신이 버스에 올라타자, 출입구의 문이 바로 닫힙니다.
당신은 급하게 뒤좌석으로 달려갑니다.
창문을 열고, 우산을 든 채 당신을 올려다보는 그와 눈을 마주합니다.

방금 꼭 물어봐야 아냐는 말.
더 늦기 전에 지금 해야겠네.
.....안녕, 사랑했어.
그렇게 속삭이는 고우시에게 뭐라 답하기도 전에.
이내 버스는 움직입니다.
수몰되는 세계에서, 수몰될 듯 슬프기만 한 버스가 빗길을 가르고 내달리기 시작합니다.
이제는 둘이 아닌 당신만을 태운, 그 누구도 존재하지 않는 버스 안.
이 주제 못할 슬픔을 어떨게 견뎌내라는 걸까요.
이제 옆자리에 더는 네가 없는데.
너 없는 삶 속에서 나는 억겹같은 하루를 견뎌내며 살아가야 할 텐데.
이 슬픔을 어떻게 씻어내야 한다는 말인가요.
넘쳐 흐르는 슬픔에 턱 끝에 맺힌 눈물을 훔쳐냅니다.
뺨 위로 꽃잎처럼 흩어지는 눈물을 닦아내고, 또 닦아냅니다.
입술 바깥으로 침잠되어있던 고통이 터집니다.
많이 보고싶을 거예요.
다시 만나기 전의 수많은 시간을 버텨내며 나는 아주 아주 많이, 당신이 보고 싶을 거에요.
.
눈물이 흠뻑 젖어든 소매는 하얗습니다.
어느새부턴가 환자복 차림입니다.
무거이 내려간 고개에, 문득 품에 안겨있던 국화 꽃잎 위로 시선이 떨어집니다.
까맣게 시들어있던 국화는 물기를 머금어 생생합니다.
다시 피어난 겁니다.
나의 삶을 향해 되돌아가는 이 버스 안에서 말이에요.
국화는,
붉습니다.
이제 더는 흰 국화가 아닌 붉은 국화예요.
떠올랐나요?
붉은 국화의 꽃말은,
당신을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
당신은 품 한가득 국화꽃다발을 끌어안습니다.
그 위에 호흡을 묻고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냅니다.
...
.
.
.
삐.
삐.
삐.
익숙하고도 적막한 빗소리, 그 틈 사이로 새어나오는 희미한 기계음에 눈꺼풀을 떠올립니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흰 천장.
소독약 냄새. 밝은 빛.
아, 바뀐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이 곳이 바로, 고우시가 인도해준 나의 목적지 입니다.
놀란 간호사의 목소리, 커튼을 치고 급히 들어서는 의사의 얼굴.
난잡하게 흐드러지는 내 삶의 빛.
네가 없는 너의 기일.
내가 살아 돌아온 비 내리는 밤의 병실.
.
눈가에 고여있는 뜨거운 물기 탓에 눈이 아픕니다.
.
가슴에 담기 벅차고, 감은 눈 아래 떠올리기 힘들고, 그 삶이 짧았기에 찬란했고 슬픈 이름이 있습니다.
.
안녕, 고우시.
.
한 점 떨림 없이 애정이 담긴 목소리로 네 이름을 부르는 것.
.
END1. 그것이 내 사랑의 정의였다.
<카네시로 고우시 로스트, 세실 생환. 노덴스의 도움으로 고우시 영구 소멸 X. 후에 구제 가능>